반디에게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생각하는 오체투지에 참여하거나 동조하는 그대는 이미 세상을 아름답게 밝히는 반딧불이 그런 당신을 반디라 부르겠습니다.

반디님! 중악단에서 1차 회향이 있은 지 여러 날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오체투지의 감동을 안은 채 삶의 현장에서 고군분투하고 계시는지요? 아니면 가치 있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그저 일상에 젖어들게 만드는 시간의 마력 앞에서 오체투지의 감동도 가뭇없이 사라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다시금 오체투지를 회상하므로 망각의 강을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을 것 같아 이렇게 편지를 띄웁니다.

제가 처음으로 오체투지에 참여한 것은 9월 4일입니다. 성삼재 주차장을 오체투지로 내려오시는 수경스님과 문규현신부님을 뵙는 순간 가슴 속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감동이 아닌 분노의 감정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끙끙 신음 소리를 내며 내려오시는 두 분의 모습이 안타깝고, 왜 연세가 지긋하고 몸도 불편한 두 노 수도자를 이렇게 거리로 내몰아야 하는가에 대한 분노였습니다. 분노의 화살 끝에는 세상이 있었고, 이명박 정부가 있었습니다.

고진이 “풍경은 기원을 숨긴다”고 말했다지요. 풍경을 보자면 아마 분노의 화살이 향한 방향이 맞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기원을 캐묻자 화살의 방향이 그곳만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것이 아니고 우리의 손으로 그를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명박 안에는 우리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긴 것이지요. 오체투지는 그런 우리의 모습을 고발하고 있었습니다. 욕망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그 길을 멈추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지요. 제국과 산업자본의 큰 특징 가운데 하나가 바로 도로일 것입니다. 삼보반배로 뒤따르며 바라본 도로는 동물의 사채로 넘쳐나고 있었고, 도로는 살림을 위한 것이 아닌 죽임을 위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오직 속도만을 생각한 도로는 이미 길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도로의 숲을 사는 우리는 과연 어떨까요?

하이데거는 “장소가 실존을 규정한다”고 말했다지요. 그런데 이렇게 도로의 숲을 사는 우리의 실존은 과연 어떨까요? 오체투지는 거짓 실존을 깨뜨리는 소리라 여겨집니다. 물론 알튀세르의 말처럼 “체계도 우리를 호명하지요” 그러나 체계의 소리는 무지의 소리요 거짓의 소리일 뿐입니다. 고요한 일상을 깨뜨리는 소리에 깨달음을 얻었다는 선사들의 얘기를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들사람 세례자 요한도 들의 소리로 광야를 찾아온 사람들의 일상이 바뀌어야 한다고 외쳤지요. 그렇다면 우리의 일상이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제레미 리프킨은 악을 차가운 악과 뜨거운 악으로 구분하는데 사람들은 무장 강도, 강간, 고의적인 동물학대 같은 뜨거운 악의 범행에는 격렬히 분노합니다. 그러나 먼 곳에서부터 영향을 미쳐오고, 기술과 제도의 허울 속 깊은 곳에 모습을 숨기고 있는 차가운 악은 거의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햄버거를 소비하는 것을 두고 악행을 범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햄버거 속에 들어있는 지구온난화, 사막화, 제3세계의 기아 등을 본다면 차가운 악은 뜨거운 악보다 훨씬 치명적이라는 것을 알 것입니다.

나비의 날개 짓 하나가 큰 태풍을 만들 수 있습니다. 차가운 악에 무지한 채 행하는 개인의 모든 행동들이 모일 때의 태풍을 우리는 경험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취향, 행동이 일으킬 엄청난 파장을 생각하고(이것이 윤리의 기본재료라고 슬라보예 지젝은 말하지요) 조심할 때 반디의 자그마한 날개 짓은 큰 훈풍을 만들 것입니다.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은 차가운 악에 눈을 뜨는 것으로 시작될 것입니다.

20일 정도 오체투지에 함께 하면서도 내내 삼보반배를 해왔습니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는데 김기석 목사님은 오체투지를 익음의 소리, 성숙으로 표현했더군요. 그런데 저는 오체투지를 생명의 소리로 보았습니다. 꼿꼿이 서서 질주하는 것이 성장이라면 삼보반배를 성숙, 하심의 지극한 표현인 오체투지를 생명의 소리로 보았습니다. 성서에도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야 생명의 결실을 얻는다고 했잖아요. 아직 성숙하지 못한 제 자신을 발견하고 생명의 소리는 무리라 여겨, 성숙을 향한 삼보반배 만을 거듭했지요. 그러나 수신제가치국평천하가 노예의 윤리가 될 수 있듯이 성숙과 생명이 함께 가지 못했을 때 같은 결과가 나올 수 있음을 깨닫고 마지막 2일은 오체투지를 하였습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오체투지에 참가하면서 깨달은 것들입니다. 반디님들도 나름대로 깨달은 것들이 있을 줄 압니다. 그러나 처음에 언급한 대로 모든 것을 집어 삼키는 시간 앞에 우리는 너무나 나약합니다. 시간이라는 괴물을 이길 수 있는 길은 알랭 바디우가 이야기 한 것처럼 충실성입니다. 충실성이야말로 모든 사멸을 꿰뚫는 생명입니다.

반디님! 우리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세상도 우리를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각자가 오체투지를 통하여 깨달은 바를 충실하게 수행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두에게 생명과 평화가 가득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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